[기획] '모레노호' 출범 임박, 데이터 축구의 차가운 머리와 K리그의 뜨거운 피가 만난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긴 오랜 공백을 끝내고 스페인 출신의 로베르트 모레노(Robert Moreno) 임시 감독 체제로 새 출발을 알린다. 홍명보 감독의 사임 이후 어수선했던 대표팀 사령탑 자리를 채운 모레노 감독은 뛰어난 데이터 분석 능력과 치밀한 전술 설계로 무장한 전술가다. 오는 9월 14일 취임 기자회견 및 1기 명단 발표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는 '모레노호'는 9월 A매치 4연전 및 향후 아시안컵 연장 임기까지 시험대에 오른다.
이번 모레노 1기 소집은 아시안게임 차출 및 주요 선수들의 부상 변수가 겹치며 K리그와 해외파를 아우르는 대대적인 명단 개편이 예고되고 있다. 본 기사에서는 모레노 감독의 전술적 지향점, 포지션별 파격 발탁 가능성, 핵심 자원의 활용법, 그리고 대표팀 내부·외적 이슈를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1. '패스 33번보다 3번이 낫다', 데이터와 직관의 융합 전술
모레노 감독 축구의 핵심은 '효율성'과 '데이터'다. 과거 스페인 대표팀과 AS 모나코, 소치 등을 이끌었던 그는 스페인 출신임에도 무의미한 점유율(티키타카)에 집착하지 않는다. "패스 33번으로 골을 넣을 바에야 효율적인 패스 3번으로 골을 넣는 것이 낫다"는 그의 명언처럼, 빠르게 상대 공간을 무너뜨리는 직관적인 전진 패스와 정교한 포지셔닝을 선호한다.
특히 모레노 감독은 한쪽 측면에 숫자를 늘려 상대를 끌어당긴 뒤 반대쪽 크랙에게 1 대 1 상황을 만들어주는 '오버로드 앤 아이솔레이션(Overload & Isolation)' 전술을 유기적으로 활용한다. 또한 공격이 끊긴 즉시 전방에서 강력하게 상대를 압박하는 '즉시 재압박'을 강조한다. 데이터에 기반한 세밀한 전술을 그라운드 위에 구현하기 위해서는 선수들의 높은 축구 지능과 왕성한 활동량이 필수적이다.
2. '모레노 1기'의 파격 실험, K리그 폼우선주의와 측면 자원의 재편
이번 9월 소집은 엄지성, 양현준, 배준호 등 연령별 대표팀 차출과 이한범 등의 부상 악재가 겹치며 측면과 중원 라인업의 대대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 모레노 감독은 과거 선수의 명성이나 나이보다는 당장의 폼과 전술적 적합성을 최우선으로 삼는 경향이 뚜렷하다.
- 측면 공격진(크랙 & 압박형 윙어): 스코틀랜드 레인저스에서 10번을 달고 활약 중인 김민수를 비롯해, K리그에서 독보적인 기량을 선보이고 있는 이승우가 유력한 발탁 후보로 꼽힌다. 이승우는 아이솔레이션을 완성할 수 있는 전형적인 크랙 자원이다. 또한 강력한 수비 압박과 스위칭 능력을 갖춘 정승원(서울), 김대원(강원), 문민서(광주) 등도 모레노의 레이더망에 포착될 가능성이 높다.
- 골키퍼 및 후방 빌드업 라인: 기존 김승규, 조현우 체제에 균열이 감지된다. 소속팀에서 압도적인 선방쇼를 펼치고 있는 구성윤(서울)의 복귀 가능성과 함께, 빌드업 능력이 탁월한 박청효(강원) 같은 자원이 발밑 기술을 중시하는 모레노 감독의 선택을 받을지 주목된다.
- 중원과 수비 라인: 황인범의 파트너 자리를 두고 전진성과 소유 능력이 뛰어난 정호연(수원), 이유현(강원), 서재민(인천), 손정범(서울) 등이 K리그의 새로운 엔진으로 테스트받을 수 있다. 왼발잡이 센터백 자리는 이기혁의 아시안게임 차출로 인해 김태현(가시마)과 김주성(히로시마)이 메울 것으로 보인다.
3. 손흥민·이강인 활용법, 톱보다는 '레프트 윙' 손흥민, '스위칭' 이강인
대표팀 공격의 핵심인 손흥민과 이강인을 모레노 감독이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도 뜨거운 관심사다.
모레노 감독이 최전방 톱에게 요구하는 역할은 단순히 득점에 그치지 않는다. 등지는 플레이로 상대를 끌어내어 2선 공간을 열어주거나, 헌신적인 수비 가담을 요구한다. 손흥민을 최전방 톱에 바짝 붙여 쓸 경우 체력적 소모가 크고 득점력이 반감될 수 있기에, 모레노 감독은 손흥민을 그의 본래 장기가 가장 잘 살아나는 '레프트 윙'에 배치할 가능성이 높다. 최전방은 복귀한 조규성, 오현규, 이호재 등 타깃 및 침투 능력을 갖춘 자원들이 경합할 전망이다.
반면 오른쪽의 이강인은 전술적 자유도를 부여받아 중앙으로 꺾어 들어오는 스위칭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강인이 중앙으로 이동하며 상대 수비를 시선을 끌어주면, 반대편의 손흥민이나 풀백이 넓은 공간을 활용해 파괴적인 공격을 펼치는 구상이 모레노 전술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4. 축구장 밖의 이슈들, 심판 공정성 파동과 축구 팬들과의 호흡
모레노호 출범이라는 경사 뒤편에는 한국 축구가 해결해야 할 내부 과제들도 산적해 있다. 최근 K리그 2 심판의 승부조작 시도 및 하위 대회 판정 청탁 파문이 폭로되며 한국 축구 행정과 심판 판정계의 공정성이 시끄럽다. 대표팀이 새 출발을 다지는 시점에서 이러한 그라운드 밖의 악재를 빠르게 수습하고 바로잡는 협회 차원의 노력이 시급하다.
5. [총평] 치밀한 냉철함과 뜨거운 도전, 모레노호가 나아갈 길
로베르트 모레노 감독의 부임은 한국 축구 대표팀에 커다란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과거 클린스만 체제에서 지적되었던 '무전술'과 '방임형 리더십'에 지친 팬들에게,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밤새 축구를 연구하는 '학구파 전술가'의 등장은 가뭄의 단비와 같다. 라리가 분석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할 정도로 최신 기술과 분석에 능통한 그의 능력은 한국 축구의 전술적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명확한 한계와 숙제도 존재한다. 모레노 감독은 커리어 내내 선수단 관리 및 미디어와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유연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6경기라는 짧은 임시 감독 체제 속에서 본인의 고집만을 내세우기보다는, 한국 축구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선수들과의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9월 14일 발표될 '모레노 1기' 명단은 그가 한국 축구를 얼마나 깊이 있게 이해하고 분석했는지를 보여주는 첫 번째 시험대가 될 것이다. 데이터라는 차가운 머리로 무장한 모레노 감독이 K리그와 해외파 선수들의 뜨거운 열정을 어떻게 하나로 묶어낼지, 한국 축구의 새로운 여정에 팬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