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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불모지'서 핀 스케이트보드 천재… 18세 강준이, 전설들을 넘고 세계 정상에 서다

by sports-playbook 2026. 9. 16.

[아시안게임] '불모지'서 핀 스케이트보드 천재… 18세 강준이, 전설들을 넘고 세계 정상에 서다

 

스케이보드 플레이 이미지 사진 AI 생성 이미지
스케이보드 플레이 이미지 사진 AI 생성 이미지

 
제대로 된 전용 훈련장조차 드문 대한민국 스케이트보드 불모지에서 세계 스케이트보드 판도를 흔드는 18세 신동이 등장했습니다. 경남 양산의 평범한 시골 소년에서 시작해 전 세계 프로 선수들이 선망하는 최상위 무대 SLS(Street League Skateboarding) 우승을 거머쥔 강준이 선수가 그 주인공입니다. 좌절과 부상, 신체적 격변기마저 압도적인 노력과 강력한 임팩트로 극복해 낸 강준이의 극적인 성장기와 주요 성과, 그리고 그가 바라보는 한국 스케이트보드의 미래를 종합적으로 조명해 봅니다.
 

1. 양산의 바퀴 홀린 소년, 노력형 천재로 거듭나다

강준이 선수의 시작은 거창한 스포츠계 입문이 아니었습니다. 경남 양산에서 태어나 자란 그는 어린 시절 바퀴 달린 것이라면 무엇이든 빠져들던 아이였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무렵 동네 친구의 스케이트보드를 우연히 빌려 탄 것이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원래 꿈은 바둑과 코딩을 좋아하던 로봇 공학자였으나, 보드 위에 발을 올려놓은 이후 스케이트보더로서의 삶을 선택했습니다.
제대로 된 인프라가 없던 지방 환경 탓에 주말마다 양산에서 서울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당일치기 강습을 다녔고, 새벽 4시 반에 집에 도착하는 강행군을 1년 동안 반복했습니다. 2019년 12세의 나이에 SBS 영재발굴단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을 당시 이미 130여 가지의 기술을 자유자재로 구현해 내며 '노력형 천재'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그는 "재능은 결국 노력을 이기지 못한다"는 좌우명 아래, 친구와의 만남도 마다하고 학업 대신 보드 하나에 올인하며 하루 6~8시간을 연습에 바쳤습니다.
 

2. 뼈가 떨어져 나가는 부상과 25cm 폭풍 성장의 시련을 넘어서

정상을 향해 가속도를 붙이던 강준이에게도 치명적인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2021년 최연소 국가대표로 선발된 직후, 2022년 훈련 중 오른쪽 무릎 슬계고(무릎뼈)가 떨어져 나가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수술을 받으면 다시 보드를 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진단이 나오자, 그는 반년 간의 혹독한 재활 치료를 선택했습니다. 비록 기대했던 항저우 아시안게임 출전은 무산되었으나, 재활 기간 집중적으로 강화한 허벅지 근육은 그를 오히려 더 강한 선수로 만드는 반전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또한, 최근 3년간 키가 150cm 후반에서 180cm 초반으로 25cm 이상 급성장하며 스케이트보더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신체 밸런스 균열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강준이 선수는 신장 증가에 따른 신체적 변화를 지렛대 삼아 강력한 팝과 뛰어난 점프력이라는 새로운 무기로 sublimation(승화)시켰습니다. 예민한 성격 역시 미세한 바닥의 질감을 읽고 동작을 섬세하게 조절하는 장점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3. 전설들을 무너뜨린 9점대 임팩트… 한국 최초 SLS 및 템파암 우승

체계적인 훈련과 단련을 거친 강준이 선수의 잠재력은 세계 무대에서 무서운 폭발력으로 나타났습니다. 2024년 11월, 세계 최고 권위의 아마추어 등용문인 미국 템파 아마(Tampa Am) 대회에서 한국인 최초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썼습니다. 이어 2025년 X Games 오사카 대회 준우승을 거두며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가다듬었습니다.
하이라이트는 2026년 4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프로 최고 권위 대회 SLS(Street League Skateboarding)였습니다. 단 2명만 살아남는 치열한 예선(와일드카드)을 거쳐 파이널에 오른 강준이 선수는 SLS 통산 최다 우승자 나이자 휴스턴, 파리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제거 이튼 등 세계적인 전설들과 맞붙었습니다.
결승에서 강준이 선수는 반대 방향으로 몸을 틀어 뛰어오르는 '스위치 270 백립'으로 9.5점이라는 고득점을 올린 데 이어, 실패 위험이 커 정상급 선수들도 회피하는 초고난도 기술 '널리 270 슬라이드'까지 깔끔하게 성공시켰습니다. 남들이 시도하지 못하는 오른발 전진 스위치 자세를 바탕으로 데뷔전 파이널 27.5점을 기록, 전설들을 제치고 한국인 최초 SLS 챔피언에 등극했습니다. 2026년 여름에는 X Games 새크라멘토와 지바 대회를 오가며 베스트 트릭 연속 금메달을 비롯해 한 달 만에 메달 6개를 쓸어 담는 진기록을 세웠습니다.
 

[총평]

강준이 선수의 괄목할 만한 성공은 단순히 한 천재 선수의 개별 성과를 넘어, 인프라 불모지였던 대한민국 스케이트보드의 위상을 전 세계 최정상급으로 격상시킨 사건입니다. "안전보다는 임팩트에 집중하고 늘 도전해야 한다"는 확고한 철학, 그리고 실패에 연연하지 않고 펑펑 울어버린 뒤 다시 보드 위에 올라서는 담대함이 오늘의 강준이를 만들었습니다.
특히 부상으로 한 차례 아쉬움을 삼켜야 했던 아시안게임 무대를 마침내 앞두고 있는 강준이 선수는 "지난 부상으로 놓쳤던 아시안게임이었던 만큼, 이번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는 대한민국 스케이트보드의 진짜 매력과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어 반드시 정상을 차지하겠다"라는 강한 메달 획득 의지를 다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시그니처 데크를 출시하고, 성적을 넘어 더 많은 사람들이 스케이트보드를 즐기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는 18세 청년 강준이.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2028 LA 올림픽 메달을 향해 매일 6~8시간씩 구르는 그의 휠(Wheel) 소리와 함께 한국 스케이트보드의 새로운 역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쓰이고 있습니다.